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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출처: Kyu Sung Woo Architects

 

안녕하세요 디오니입니다 :)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파트로 가득합니다. 과반수의 국민이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우리의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습니다. "아파트에 살면 편하다"는 이유 뿐만이 아니라, "아파트를 소유하면 훗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도 더해져 아파트 사랑은 지금까지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생산된 아파트 단지는 도시 경관을 해치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은 구글에 '한국의 아파트'라고 검색하면 보이는 이미지들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도시마다의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고 다소 획일적이라고 느껴집니다. 또한 아파트는 '단지화'되어 하나의 닫힌 영역을 형성하곤 합니다. 그래서 길을 걷다 보면, 단지를 빙 둘러서 가야만 하는 루트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파트가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다는 점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거주민의 입장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이 누리는 도시 공간의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아파트의 이러한 폐쇄성이 '좋다'고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된 배경이 어찌 됐건, 한국에는 이러한 아파트가 많고 앞으로도 많아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아파트 단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입니다. 

 

 

구글 검색 이미지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한국의 자랑

 

한창 경제 개발을 하며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를 놓고 보았을 때,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한국의 가장 우수한 아파트 단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88년 서울 올림픽 기간 동안에 선수와 기자들을 위한 빌리지였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서울 시민의 거주지가 되었지요.

 

필요한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작성한 개요입니다! (표 더 작게 만들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흑흑)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양재대로 1218

대지면적

 662.196(253천평)

건축면적

 59,936㎡

규모

 25~ 64

 지하1층, 지상 6~24층,
 122개동
- 총 5540가구

(1단지 1,848세대, 2단지 2,188세대, 3단지 1,504세대)

주차대수

 지상 4,500/ 지하 3.400

설비시스템 경보체제

 세대별 도난, 화재동방지경보기기

설비시스템

 풍력, 지진대비- 내진구조와 피난시설 설치

건설기간

 1985~ 1988

건축가

 우규승(Woo&Willians), 황일인(일건종합건축)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1984~1985년에 시행한 현상설계를 통해 지어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전까지는 아파트를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짓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아파트는 '디자인'되는 대상에서 줄곧 제외되었어요. 따라서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그 배치와 구성, 디자인에서 모두 일반적인 아파트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일단, 규모에서도 무려 5540가구를 수용하는 만큼 큰 단지입니다. 그런데 일괄적인 층수를 가지지 않고 6~24층이라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볼게요.

 


부채꼴 단지

 

"우리 집은 동향이야"

 

한국 사람들은 남향을 선호합니다. 여러분도 남향집에 살고계신가요? 한국의 기후적인 특성상, 양질의 햇빛을 받기 위해서는 남향이 적합해요. 물론 햇빛을 가장 많이 받는 향은 놀랍게도 동향이지만, 서향과 동향은 햇빛의 질이 다소 떨어진다고 합니다. 어쨌든, 남향 집에 대한 선호가 강한만큼 대부분의 아파트와 주택은 남향으로 지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의 배치는 거기서 거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의 배치를 보면 매우 특이합니다. 중심을 가지고 거기서부터 방사형으로 쭉쭉 뻗어있습니다. 이렇게 배치를 하면, 당연히 단지 내 모든 아파트가 남향을 갖기는 불가능합니다. 즉, 동서향의 집도 생긴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림픽 선수촌 배치도 (출처: 집의 시대)

 

【이유1 - 위화감 없는 전경】

 

살면서 우리가 위의 사진처럼 공중에서 단지를 바라볼 일은 없겠지만, 맨 위에 있는 아파트 단지의 전경 모습을 보면 이 배치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한국에는 아파트만큼 산도 많지요? 그 산들을 바라보면 어딘지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는 뒤에 산이 있건, 바위가 있건 크게 개의치 않고 아파트를 툭 얹어 그 경치를 가려버립니다. 

 

반면에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단지의 남서쪽에 자리한 산의 풍경을 가리지 않고 통과시킵니다. 부채꼴의 배치와 중심에서 뒤로 갈수록 아파트의 높이가 점점 높아져서, 그 전경이 이색적입니다. 앞서 나왔던 6~24층의 규모 기억하시나요? 이처럼 규모를 다르게 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위화감 없는 전경을 형성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스카이라인이 다채롭기도 하구요. 

 

 

【이유2 - 하천의 흐름】

 

올림픽 선수촌에는 감이천과 성내천의 두 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하천의 흐름과 아파트 단지의 흐름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올림픽 선수촌 단지는 이러한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방사형 배치를 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주거동이 동서향을 취한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주변 경관으로의 시야를 확보한다는 장점을 가져간 것이지요.

 

 

【이유3 - 한국의 마을 재현】

 

전통적인 한국의 마을에는 중심 공간이 있고, 언덕을 따라 집이 모여있는 아늑한 분위기를 가집니다. 이러한 전통마을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네요? 

 

가운데에 뒤집어진 J자 모양의 중심 상가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며 공공공간으로 사용됩니다. 이곳을 향해 점차 낮아지고 모아지는 배치를 하면서 그 중심성을 더욱 강하게 합니다. 즉, 공공시설과 광장으로 귀결되는 구조인 것이죠. 비단 이 아파트 단지에는 방사형 배치만 있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서쪽과 남쪽에는 직각직각한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일관되게 마당을 이루는 한국 마을의 요소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파 

 

인동간격과 레드번 계획

 

건축법에는 '인동간격'이라는 키워드가 꽤나 중요합니다. 건물의 높이가 높을수록, 옆 건물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으니 채광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법에서 인동간격을 지키기를 명시해 놓았습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의 경우, 방사형으로 배치하다 보니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인동간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에 따라 더 높은 층수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되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채광의 문제도 해결하니 일석이조입니다.

 

그리고 혹시 '레드번 계획'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역사를 건너뛰고 초간단하게 말해서, 녹지와 주차장이 반복되는 계획 양상입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도 이러한 레드번 식 계획이 활용되었어요.

 


최초의 복층 아파트 

 

복층입면과 다른 입구들

 

올림픽 선수촌은 복층의 주거 유닛이 섞여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약 20% 정도는 복층이라고 합니다. 복층의 아파트라니, 지금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당시에는 인기 있는 유형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탁 트이고 넓어 보이는 집을 선호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복층은 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용자는 복층을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복층형 유닛을 섞어서 구성하니, 아파트 단지 내부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또한 아파트 동의 입구도 하나하나 다르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아파트마다 차별성이 더해집니다. 이러한 다름 다름이 모여서 어우러집니다. 일반적인 아파트와 비교해보아도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의 단지 내에서 경험하는 경관의 변화는 놀랍습니다. 지난여름 답사를 다녀왔는데, 찍은 사진이 모두 다 다른 장면을 담고 있었어요. 

 

하천과 단지 내 나무들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파트라는 게 보이시나요? 하천을 따라서는 낮은 아파트 동이 배치되어 있어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합니다. 그리고 이 하천 물이 엄청 깨끗하지 않나요? 여기서 아이들이 물놀이도 합니다. 감동적인 풍경이었어요. 보통 하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걷기에는 무척 좋지만, 물속에 들어가서 놀기에는 수질이 걱정되잖아요.

 

또한 단지 내부에 놀라울 정도로 나무가 많고 울창해서 시원하고 마치 숲 속에 온 기분도 듭니다. 단지 내에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담아 울창해진 잎들이 만들어주는 그들 아래에서 걸으니 한 여름에도 시원하고 쾌적합니다. 적절하게 심어지고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이렇게 중요한 것 같네요. 

 


재건축 이슈

 

한국에는 역사적인 아파트가 꽤 존재했습니다. 당연히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도 포함이구요.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한국 아파트 역사의 중요한 사례인 반포 주공 1단지, 여의도 아파트도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아파트의 역사와 유산적 가치보다는, 부동산 가치와 효용성에 의해 재건축이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빠르게 이행됩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선진국인 만큼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독일의 경우 1920~30년대에 지어진 주거단지 6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켰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한옥'이라는 전통 건축양식이 존재합니다. 아름답고, 이러한 유산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파트도 하나의 유산입니다. 한국 근대 역사의 시작이고, 삶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한 번에 없애고, 반짝반짝하는 새 아파트로 채우는 것이 다소 안타깝게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무려 17가지 단위 주거 평면도

 

참고용으로 가져왔습니다. 네이버 부동산에서도 평면도는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무려 17가지 타입이나 된다니 놀랍습니다.

 

 


+각종 도면

 

각종 도면도 있습니다! 하하.

 

 

 


 

 

어쨌든, 부서지기 전에 가보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대하여,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파트 단지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안녕 :-0